나는 파견자다 업무기밀

이 동네(?)에서 파견을 나간다고 하면 보통 '해외봉사'를 떠올린다. 파견을 내보내는 기관 대부분 해외봉사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개도국 혹은 후진국에 자의로 나간다는 게 아직 한국에선 봉사로 인식된다는 점도 한몫 한다. 거기다 나이든 분일수록 개발협력 분야는 낯선 세계라 우리 부모님도 주변에서 나 어디 갔냐고 물으면 그냥 해외봉사 갔다고 말씀하셨다. (참고로 엄마는 여전히 친척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하신다. 팔순의 외할머니는 오죽하랴. 과년한 손녀딸의 결혼이 지상목표 3위쯤 되는 외할머니는 내 선자리 알아보는데 직업을 뭐라고 하면 되냐고 건수가 있을 때마다 되물으신다...)

이 '봉사'라는 명칭에 대한 이의는 따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 같고, 대표적으로 알려진 KOICA의 월드프렌즈를 비롯해 KCOC의 NGO 봉사단, 각 단체들의 자체 파견, KOICA 지원을 받은 수행기관의 ODA 청년인턴(국외근무) 등이 일반적인 파견 창구다. 명칭은 비슷해도 파견자에게 요구하는 분야도 다양하고 기간이나 페이, 파견자들의 목적도 천차만별이다. 파견국이야 당연히 외교부에서 제한하지 않는 동시에 한국 정부에서 ODA를 지원하는 DAC 수원국. 20대만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전문지식을 갖춘 시니어 파견도 있으며, EDCF 지원 관련해 수출입은행 해외인턴으로 나갈 수도 있다.

......는 식으로 쓰다 보면 끝도 없고 내 정보력도 한계니까 일단 여기까지. 이런 파견의 '대부분'은 현지에 명확한 근무처와 더불어 관계기관, 동료, 현지 상사, 전임자, 그리고 그 안에서의 롤이 존재한다. 프로젝트는 본부 중심으로 진행이 되고, 파견자는 단체에 소속된 레귤러 멤버가 아니라 일정한 주기로 교체되는 멤버로써 프로젝트 안의 단위사업을 진행하거나 현지 수행을 책임진다. 때문에 파견이 되기 위해선 단체에서 요구하는 일정 수준의 자격을 갖춰야 하고 교육을 이수하거나 정해진 규범을 익히는 등 일종의 통과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만나본 다양한 단위의 파견자들을 생각하면 이분법으로 구분하긴 어렵지만 쓰다 보면 너무 길어지니까, '대부분이 아닌' 파견 중 대표격을 말하자면 이른바 현지 PM급으로 나가 이미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관리나 신규 프로젝트 발굴 등 현지 사업을 총괄하는 경우가 되겠다. 보통은 본부의 사업관리자가 이 분야의 경력자를 초빙해 파견하는 경우가 많고, 여력이 되면 현지 사무소를 갖추고 직원을 채용해 파견자를 보조하게 된다. 한국 단체들의 특성상 현지에 이미 체류 중인 한국인이 관련 업무를 하다가 해외지부를 맡기도 하는데 이 얘기도 여기까지...

중요한 건 나는 위에 쓴 내용 중 없는 케이스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도, 대부분이 아닌 경우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 베트남 사업이 시작되고 첫 파견이었고 선발된 외부 인력이 아닌 내부 파견이었으며 별다른 경력은 없지만 PM이었다. 한국에서 베트남 사업을 하는 팀에 속해 있다가 팀장님의 '니가 나가면 좋겠는데. 나갈래?' 한마디에 코 꿰어 베트남으로 날아간 게 파견의 시작이었다.

참고로 내부 파견이라는 건 좀 중요한 부분. 많은 이들에게 조언받았던 현지와 본부의 마찰은 결국 서로의 이해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데, 본부의 팀장님은 현지 상황을 너무 잘 알고 현지의 난 한국 사무소의 상황을 너무 잘 알아 마찰을 빚을래야 빚을 수가 없었다. 이미 함께 일하며 서로의 성격이나 업무 스타일도 익숙한 터였고, 무엇보다 그간 한국에서 팀장님을 보조하며 베트남 사업을 봐왔다는 것은 파견을 위해 선발되는 인력과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이 사업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게 뭔지,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 팀장님께 보고 배운 게 확고히 자리 잡힌 상태에서 왔기 때문에 파견 기간 내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려던 얘기는 이게 아닌데 배경 설명이 필요해 주절주절 길어졌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다보니 편한 점도 부딪혀 나가야 할 부분도 수 없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대내외적(?) 평가에 따르면 파견자로써의 나는 썩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업 진행이야 팀의 보조가 없었다면 하지 못했을 일이라 내 공은 아니고.. 돌이켜보면 내가 잘 한 건 딱 하나, 발로 뛰었다는 것 밖에 없다. 

나가기 전엔 모든 게 원활할 거라 생각했다. 이미 수년 간 팀장님이 터를 닦아놓은 곳이고,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이 있고, 그 모든 경험을 통해 짠 완벽한 사업계획이니 그저 진행만 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야 웃음이 나지만 그땐 그랬다.

현지 사업은 출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물론 진행 단계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 사무실 책상에서 되는 사업은 단연코 없다. 거기다 아무리 출장을 많이 와도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면서 그 외 부분을 신경쓰기란 힘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장으로는 알 수 없는 현지의 이모저모를 뚫고 제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게 파견자의 몫이다. 파견자의 최고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 시간, 돈, 거리, 모든 부분에 제약이 없다. 이게 얼마나 멋지냔 말이다. 

열심히 가고, 가서 안되면 또 가고, 자주 만나고, 우연히 만나고, 이 모든 게 파견자는 가능하다. 도처에 눈과 귀를 열어 놓으면 들어오는 건 무한정이다. 경험 하나 만나는 사람 하나가 다 나의 네트워크가 되고 이 모든 걸 종합해 정보를 만들고 결과를 생성한다. 이런 부분은 특히 작은 커뮤니티일수록 도드라져서, 이래 저래 얽혀있는 커뮤니티의 어느 한 곳만 파면 정보는 넝쿨처럼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보를 물어다줘야 한국에서도 원활하게 일할 수 있다. 물론 이 정보를 기반으로 본부와 싸울 수도 있고.

대단한 업무에 대해서만 말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꽝찌에서 활동하는 INGO들의 정보는 외교청에서 받으면 그만이다. 나 역시 요청해서 어떤 단체가 무슨 사업을 하는 지 정리된 서류를 받았다. 하지만 우리 사업지에 정말 어떤 단체가 들락거리는지, 어느 단체가 어떤 로컬NGO와 협업을 하고 있는지는 내가 아는 정보가 좀 더 실용적. 직접 꽝찌를 돌아다니며 내 눈으로 보거나 마을 사람들에게 얘기를 듣기 때문이다(한 로컬NGO는 담당자가 우리 숙소에 묵어서 알게 되기도 했다). 바닷가에 놀러 갔다가 정부 사람을 만나고 술집에 갔다가 비자를 담당하는 공안들을 만난다. 우연히 알게 된 의사를 통해 새로운 단체를 알게 되고 관계된 다른 단체의 정보를 얻는다. 카페 할머니가 은근슬쩍 전하는 얘기, 시장 아줌마들의 왈가왈부를 통해 마을 사정을 파악한다. 어쩌다 오는 외국인에게 입을 열지 않던 사람들이 동네 주민이 된 우리에게는 입을 연다. 이 모든 게, 파견자에겐 자산이다.

이렇게 얘기하다보면 파견이라는 게 참 피곤하게 느껴질 것이다. 항상 레이더를 풀가동해 사방을 살펴야 한다니 이게 뭔 귀찮음이냐. 근데 사실 이 레이더는 켤 필요가 없다. 현지에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자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레이더를 끌 수 없다는 게 파견자의 어려움. 이른바 온오프의 문제인데, 한국에서는 열심히 온on 상태로 일하다가 퇴근하고 집에 가서 쉬거나 주말에 뒹굴거릴 때 오프off가 되어 뇌와 몸을 풀게 된다. 근데 이게 현지에서는 가장 편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있어도, 카페에서 유유자적하며 시간을 때워도 늘 온의 느낌인 것이다. 설명하기 미묘하지만 베트남에 익숙해지고 편해지는 것과는 좀 다른 부분인데.. 강약은 다르지만 24시간 긴장태세라고 하면 될까. 이것만은 진짜 좀 피곤했다. 

그래서 초반에 한국으로 보낸 내 보고서는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새로이 알게 되는 것들은 너무 많은데 적절히 버리고 취하는 걸 아직 못해서, 무조건 죄다 보내고 '팀장님이 판단해서 뽑아쓰세요' 모드를 유지했던 것. 나중엔 내용을 적절히 취사선택하고, 내가 중요하다 생각한 것들은 따로 표시하고, 한국에서 정신없이 이것 저것 하는 팀장님이 이미 까먹었을 앞의 내용들을 정리해서 넣기도 했다. 이런 작업은 본부에서 현지 상황을 제대로 알게 하는 것도 있지만 파견자의 판단 혹은 주장을 사업 방향에 녹여내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좀 더 원활한 진행과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본인 욕심대로 뛸 수 있다는 것도 파견자의 강점이다. 딱딱하게 말하면 추가업무, 정확히 말하면 자체업무. 안 가도 될 걸 가거나, 이미 끝난 걸 다시 확인하거나, 달라고 하지도 않은 서류를 작성하는 작업이 되겠다. 한마디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단 얘기다.

예를 들면 내가 만든 장애아동 기초정보 자료가 그랬다. 의료적인 부분이 주로 기록된 차트와 별도로, 이곳 저곳에 흩어진 아이들의 정보를 취합해 새로운 자료를 만들었다. 쉽게 말해 우리와 관계된 모든 아이들을 데이터화하는 작업. 외국인들이 올 때마다 반복적으로 해대는 질문의 횟수를 줄이고 지원 내용을 고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에서 어떤 지원이 들어왔을 때 적절한 아이를 바로 추천할 수 있고, 무엇보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아이들과 각 가정에 가는 혼란을 최소화 할 수 있기에 꼭 필요했다. 

사실 누구보다 파견자로써 내게 절실했던 것이, 점점 늘어가는 아이들의 모든 사항을 다 기억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자주 보지 않는 아이의 경우 이전에 어디까지 진행했고 어떤 내용의 약속을 했는지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기본 정보는 물론 가정 형편이 어떤지, 형제들 상황은 어떤지, 부모 성향이나 주변 관계는 어떤지, 어느 단체의 어떤 지원을 받았는지, 우리와는 언제 어떤 대화를 했는지.. 한명당 하나의 자료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필요한 항목을 넣어 양식을 만들고 아이들의 사진도 작게 인화해 붙였다(나는 이 작업을 결국 끝내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고, 후임자에게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며 인수인계했지만 그 뒤로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런 부분은 파견자 본인의 마인드도 중요하지만 파견자를 관리하는 본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파견이라는 건 분명 쉽지 않은 부분이다. 사는 건 역시 출장과 달라서, 업무에서든 생활에서든 스스로 매뉴얼을 만들고 모든 걸 정해나가야 했다. 분명 힘들었지만 내내 팀장님이 해준 말이 있었다.

한번도 나를 부하직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현지에 있는 나의 의견과 판단이 한국에서 사업을 총괄할 때 매우 중요하다는 것. 팀장님이 끌고 나가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현지에서 같이 만들어 나가야 하는 사업이라는 것.

이렇게 믿어줬기 때문에 온전히 내 사업으로 생각할 수 있었고, 그래서 휴가 좀 가고 놀러 가라는 팀장님의 잔소리(?)를 무시하고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시키기 않은 노력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가 없었다고 해서 팀장님과 항상 화기애애했을 것 같나? 의견 대립도 하고 눈물 쏙 빠지게 혼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영향을 미치기에는 흔들리지 않는 틀이 있었다. 적절한 요구와 적절한 수용이 있어야 서로에게, 무엇보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을 보면 파견을 가는 사람도 파견을 보내는 사람도 불만스러운 상황이 많은데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건 사실 개인의 기본적 마인드와 단체의 방침 혹은 정책과도 관계가 있는데 이걸 더 풀어나가기엔 말이 너무 길어지고... 어쨌든 나는 보낸 사람이 아니라 보내진 사람이니까 여기선 이 입장에서만 말하자면, 파견을 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적 목표가 무엇이 되었든 파견은 내 볼일 보러 가는 게 아니다. 단체가 무엇을 요구하고 어떤 사업을 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하고, 최대한 발로 뛰어줘야 한다. 당연히 힘들다. 처음에 적응하는 데만도 시간이 걸리고 한국과 전혀 다른 상황들이 피곤하다. 말 안통하는 것도 스트레스고 전기도 나가고 물도 끊기고 협의인지 싸움인지 연속에 속도 안 좋아지고 혼자 아프면 답도 없고... 다 안다. 특히 나처럼 도시가 아닌 곳에 나온 사람이라면 더 힘들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나 좋아서 나온 것을. 본부와 상황이 다른 것을. 그럴 땐 그냥 이 힘든 것들을 상쇄할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을 찾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단언하건데, 현지에는 날 힘들게 하는 조건들이 무궁무진한만큼 행복하게 해주는 조건들도 무궁무진하다. 



내 파견 기간이 긴 것도 아니고 이 분야의 대단한 경력도 없고 선발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한 것도 아니라, 처음엔 파견 내용을 가지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팀장님이 쓰라고, 쓰고 있냐고, 썼냐고, 틈만 나면 채찍질을 하는데도 끝까지 버팅기고 안썼더랬다). 그런데 이제 와서 조금씩 풀어놓는 건 첫째로 언젠간 흐릿해질 내 기억을 믿을 수 없어 기록 차원에서 남기기 위함이고 둘째는, 내 경험도 나름 쓸모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팀장님 말대로 기간이 오래 되었다고 현지를 더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기간이 짧다고 일을 더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 부족한 건 부족한대로 쓸모 있을 것이고, 시간이 갈수록 '나 좀 잘 한 것 같다'는 느낌도 있다. 파견에 대해 왈가왈부할 전문성 혹은 경력을 묻는다면 할말은 없지만 내가 나름 느꼈던 바를 통해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이제 와서 조금 어깨를 펴본다. 

덧글

  • 2018/01/10 20:0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만물상 2018/01/30 23:35 #

    안녕하세요~ ngo봉사단이면 지금 합숙중이시겠네요. 제가 아는 것이라면 당연히 말씀드릴수 있는데 제 경험이 너무 오래되서 도움이 되실지 잘 모르겠어요. 전 기수 분들이 더 많이 아실텐데..ㅎㅎ 그래도 궁금한 것이 있으시다면 novluc@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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