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남자가 멋있어 보일 때 낯선 일상

마음의 변화라는 게 그렇다. 느리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찾아오지만 깨닫는 건 항상 순간이다. 문득 알게 된다. 아, 변했구나, 하고. 깨닫지 못했지만 분명 일어나고 있었던 그 변화의 과정을 그제서야 돌이켜보고, 달라졌구나, 한다. 


질문 하나 하고 싶다. 
본인이 인종차별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아마 대부분 절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 두 번째 질문. 
본인이 외국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마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여자라면, 본인이 동남아시아 남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남자라면, 본인이 남미 인디오 여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으나 동남아 여성은 오히려 좋아하는 듯 하여...)

세 번째 질문의 경우 남자들에게는 물어보지 않았으나 여자들의 경우, No였다. 
덧붙이자면 동남아 남자가 싫다거나 동남아 남자와 결혼하기 싫다는 게 아니다.
‘동남아 남자를 그렇게 좋아하게 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동남아 남자랑 결혼하진 않을 것 같은데.’
가정 자체가 불가능이었다. 이 차이가 느껴지나 모르겠다. 


꽝찌성 고용지원센터에서 한국문화 강사를 할 때 내 학생들은 95% 정도가 남자였다. 간혹 내 나이 또래나 더 많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20대 초반이었는데, 전반적인 외모는 한국에서 흔히 예상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한국 남자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피부톤이 어둡고, 평균적으로 키가 작고, 당연하게도 패션센스가 제로였다. 사실 이건 동남아라는 지역적 배경에 더해 ‘시골애들’이라는 특성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지만... 뭐 한국에서 보기엔 도긴개긴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정확하진 않으나 기억으론 꽝찌 생활을 시작하고 한 달 정도 후였다고 생각되는데 어찌됐든 바로 그날이었다.
학생 중 몇 명이 진심으로 멋있어 보이는 거다.
뭔가를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이성적인 상대로 보기엔 애들이 너무 어렸고... 그런 걸 떠나 진심으로 잘 생긴 녀석, 인정할 정도의 훈남인 녀석들이 있었다. 평균은 평균일 뿐 키도 웬만했다. 쟤가 저렇게 멋있었나, 내 학생 중에 저런 애가 있었나, 감탄했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내가 베트남 남자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너무나 당연하고도 당연하게 그 어떤 편견도 없다고 자신하고 있던 내가 나도 모르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한국 혹은 선진국의 백인 남자와 구별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동남아 사람이 멋있어 보인 그 순간 깨달았다.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쓸까 말까 망설이다 쓰는 글이지만 이왕 쓴 거 솔직해지자. 이성의 외모를 볼 때는 당연히 취향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상형이라는 것도 있다. 한국 남자라고 다 멋있게 보이지 않고 백인 남자라고 다 잘 생겨 보이지 않는다. 모델급 외모에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고 해서 무조건 호감을 갖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상대방을 이성이라고 인식했을 때 가능한 것들이다. ‘인종’에 따라 그런 인식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걸 그전까지 나는 깨닫지 못했다.

잘 생겼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 못 생겼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피부가 희네 검네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아니 들 필요도 없는 그냥 동남아 남자였다. 부디 한국말 잘 하는 동남아 분이 이 블로그를 보지 않길 빌며 대놓고 쓰자면 이 ‘동남아 남자’에는 지역적 배경이 아닌 인종적 차별이 함의되어 있었다. 

아무리 잘 생기고 조건이 좋은들 동남아 남자가 멋져 보일 리가 없잖아? 
미국 배우나 영국 가수의 팬이 될 순 있지만 베트남 가수의 팬이 되는 게 가능하겠어?

좀 과격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쓰면서도 민망한 이 문장들이 어쩌면 내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창피한 얘기를 고백할 수 있는 건 지금의 나는 그전의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나의 변화는 단순히 이성을 보는 시각에 그치지 않았다. 어느 샌가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인종의 카테고리를 삭제한 채 다가오기 시작했다. 잘생긴 베트남 남자가 아닌 잘생긴 남자가 되고, 예쁜 베트남 언니가 아닌 예쁜 언니가 되고, 베트남 할머니가 아닌 그냥 할머니가 되었다(물론 국적으로는 분명 베트남이지만 요는 그게 아니라는 걸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여린의 동네슈퍼 아줌마와 서울의 동네슈퍼 아줌마에게 느끼는 감정이 일치했다.

적당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 불발에 그치긴 했지만 베트남 사람과 결혼하는 것도 상상해봤다. 사실 결혼보단 일 때문에 떠올린 것이긴 한데.. 이대로 꽝찌에 살면서 이 사업을 계속 해나가는 삶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 살다 마음 맞는 베트남 사람 만나 결혼해서 정말 꽝찌 사람이 될 수도 있겠구나, 뭐 그런 생각을 했었다(사실 한국에서도 결혼 자체에 별뜻이 없었던 걸 생각하면 이건 좀 대단한 발상이다). 어쨌든 그렇게 내 마음 속에서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같은 카테고리에 안착했다.

다만 불안한 것은 이 모든 게 깨닫기 전까지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이라는 점 때문이다. 어느 샌가 변화가 찾아왔고 문득 돌이켜보니 변해 있었지만, 그걸 느끼기 전까지 나는 이런 변화 자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변화가 일어나기에 필요한 전제조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차별하지 않는 내가 차별하지 않게 변화할 리가 없고, 이미 편견 없는 내가 편견 없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 역시 깨닫지 못한 어느 부분에서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된다. 

덧글

  • wue 2014/03/04 14:59 # 삭제 답글

    베트남에서 생활하시나봐요. 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꽝지 여행기도요.
    제가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는데 어려워서 생각보다 잘 안되네요. 좀 빨리 향상될 수 있는 방법이나 아니면 현재 공부하고 계시면 공부방법 좀 공유해 주세요.

    베트남에서 살게되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나요?
  • 만물상 2014/03/05 11:34 #

    지금 생활하는 건 아니고 작년에 귀국했구요. 기억날 때마다 주절주절 쓰는 글입니다.^^

    베트남어는.. 저도 잘 못하는지라 뭐라 말씀드리기가..- -;
    가기 전에 베트남 분에게 개인교습을 받긴 했는데, 홀랑 다 까먹고 현지에서 제로부터 시작했었구요.

    혹시 회화가 목적이시면 아무래도 베트남 사람과 대화를 해보시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전 베트남어가 일하는 데 필수조건은 아니었던지라 현지에서도 따로 공부는 안했거든요.
    다만 항상 사람들 만나 대화하고, 통역이 하는 말도 좀 유심히 듣고,
    학생들하고도 있을 때도 딱히 할말 없으면 베트남어 알려달라고 해서 연습하고 뭐 그랬습니다.
    그냥 산다고 되는 건 아닌 듯 합니다.
    대도시에서 적당히 영어 한국어 쓰며 사는 분들은 1년이 지나도 거의 말을 못하시더라구요.

    참고로 베트남어는 우리나라보다 방언의 차이가 커서, 심한 경우에는 말을 못알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당연히 꽝찌사람들 말을 들으며 배운지라..
    호치민이나 하노이에서 만난 사람들이 '외국인이 사투리 쓰는 거 첨봤다'며 엄청 재밌어 하대요.ㅋㅋ
  • 아름다운 사람 2014/03/09 16:09 # 삭제 답글

    나 요새 유투브에서 베트남가수들의 노래를 들어봤는데 비록 유럽권이나 북미권의 팝가수들에 비해 노래실력이 그럭저럭이고 인기가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베트남 무시하면 안되는이유가 전체인구의 약 50%이상이 만30세이하의 청년층들이다! 더군다나 전세계에서 인구가 13번째로 많은나라다! 베트남은 비록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후진국취급을 받지만 경제성장률은 점점 높아가고 중진국을 훌쩍넘어갈거다!
  • 미네랄 2015/07/18 17:59 # 삭제

    베트남분이신것 같은데 진정하세요ㅎㅎ

    싱가폴에서 4년반 베트남에서 2년을 생활해 본 저로써는 만물상님의 글이 공감 갑니다
  • 홍반장 2014/04/09 11:37 # 삭제 답글

    베트남 생활 2달...

    공감합니다.
  • 만물상 2014/04/13 14:59 #

    공감해주셔서 다행입니다.^^;
  • 혈사로야 2014/06/23 18:33 # 삭제 답글

    베트남에 있었던 사람으로써 여자들은 한국남자 엄청나게 좋아하던데요.단지,그 배경에는 선진국의 남자와 결혼하면 가난을 벗어난다는 믿음이 있기때문이죠.
  • 경미니 2014/07/02 22:48 # 삭제 답글

    얼마전 라오스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느낀 감정을 잘 정리해서 적어주신 것 같아 고마운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 만물상 2014/09/18 09:25 #

    너무 늦은 댓글이지만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 코코이찌방 2016/07/15 19:14 # 삭제 답글

    저는 베트남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한청년을 만나서 이야기를하게 되었지요 한국어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누나누나 거리는 모습이 어쩜 그리 이쁜지요.시간이 흐를수록 호감이 생기고 물론 베트남을 떠나와 한국에있지만 가끔 연락을하면서 애틋한 감정이 들기도 한답니다.
    혹시 그러는데 베트남에서 어떤일을하시는지 어떻게오시게 되었는지 알수있을까요?
  • 만물상 2016/07/24 23:14 #

    몇달만에 들어왔는데 답이 너무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꽝찌 생활은 정리한지 오래입니다만, 그때도 지금도 NGO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C 2017/02/26 13:29 # 삭제 답글

    저는 다른 나라에서도 살다가 지금은 미국에 한인이 많은 편은 아닌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데, 한 베트남인 남자 동기와 1년 반을 친구로 지내다가 올 해 교제하기 시작했어요. 저도 비백인을 찾아보기 힘든 나라에 살 때는 제가 인종/국적 이라는 카테고리를 삭제하고 사람들을 본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오니까 그게 아니더라구요.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 친구와 교제를 결정하기 전에도 고민 중 인종적인 그런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서 흑인 남자친구를 가진 한국인들이 한국인들 사이의 편견때문에 연애 사실을 종종 숨긴다고 하는데, 동남아시아 지역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제는 스스로 그런 것들이 완전히 사라져서 정말 좋아요
  • 웹서핑으로하다 들어 2017/03/24 17:01 # 삭제 답글

    음슴체로 쓰겠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저는 하노이에 살고있는 남자임.
    1년정도 됨.
    베트남 남자와 한국 남자 신체 차이는 큼 (한국남자가 더 큼)
    하지만 외모나 패션센스는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큰차이없음.
    오히려 한국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때도 있음.
    여기는 기본적으로 남자들이 껄렁껄렁한 스타일인데 애들이 운동을 많이해서 그런지 몸이 좋음
    그리고 강한척을 해서 그런지 눈빛이 더 사납고 남자다움.
    머리 스타일도 한국 남자들에 비해 더 신경을 많이 쓰는것 같음

    가끔 클럽가서 돈많은 유학파 남자여자 현지 어린애들만나면 급이 다름.
    이런 경우는 인종을 초월했다고 생각함. 어딜가나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함.
  • 활발한 얼음여왕 2017/06/29 22:58 # 답글

    베트남 남자와 사랑에 빠진 한 여자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저 혼자 좋아하는거구요.
    혼자 여행 가서 친구로 지내다 저도 모르게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됐다는..그런데 대부분의 베트남 남자들이 그렇듯이 그 친구도 한국남자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좋아서..혹시 그래서 제 마음을 거부하는건 아닌지 걱정이예요.. 혹시 베트남 남자는 주로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아시나요? 한국여자를 무조건적으로 좋아하는건 아니니까요. 그사람이 베트남에서도 평범한 스타일은 아닌지라.. 저도 남자는 만나볼 만큼 만나봐서 남자의 심리는 왠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문화가 달라서 그런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전 정말 그 친구를 진심으로 사귀어보고 싶어요. 단지 호기심 때문에 이러는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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