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꽝찌 사람: 띠엔 아저씨 낯선 일상

꽝찌에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 중 하나는 이동수단의 마련이다. 

평소에 돌아다닐 땐 시장에서 산 자전거를 타거나 쎄옴을 이용하는데, 거리가 멀거나 업무 때문에 짐이 많으면 차량이 필요하다. 여러 명이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 인원이 많으면 쎄옴을 여러 대 타는 것보다 차 한 대 빌리는 게 싸기 때문이다. 

여튼 도시에서라면 방법이 많겠으나 우리 사업지는 택시는 커녕 버스도 없는 시골. MAG처럼 돈이 많은 NGO들이야 멋지게 로고 박은 차량을 종류별로 구비하고 있지만 우리에겐 언감생심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개인차량이다.
 
여린에 무슨 개인차량이냐 하겠지만 이렇게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곳에는 운전을 업으로 하는 일종의 개인사업자들이 꽤 있다. 성인이 되자마자 일단 면허부터 따고 보는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보니 운전 만으로도 돈을 버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이나 가게 벽 같은 곳에 보면 전화번호와 함께 차량대여 한다고 적어놓은 종이들이 붙어있다.

본격적으로 파견을 나오기 전까지는 올 때마다 인원에 따라 7인승 혹은 25인승 차량을 빌렸는데, 25인승은 우리가 타고 다니기에 너무 크고 7인승은 아저씨가 집에서 오는 데만 30분이라 급할 때 이용하기에 불편했다. 그때부터 차량 물색이 시작되었다. 우리만의 꽝찌투어 때 이용했던 차는 에어컨에서 더운 바람이 나오는 고물이었다. 택시대여는 생각보다 안 비싸고 쾌적했으나 동하를 거점으로 해야 했다. 이런 저런 시행착오 끝에 만난 사람이 띠엔 아저씨였다.

한국에서 출장나온 팀을 맞을 때도 써야 하기에 일단 만나서 차량 상태를 보기로 했는데, 한국의 내 차보다 훨씬 좋은 7인승 차가 숙소 마당에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내린 띠엔 아저씨는 깨끗하게 다린 셔츠와 정장 바지, 구두를 착용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인상이 너무 좋았다. 거기다 아저씨 집은 우리 숙소와 차로 3분 거리. 더 볼 것도 없이 합격이었다.



그리고 내가 꽝찌를 떠나는 순간까지 띠엔 아저씨는 우리와 함께였다.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척되면서 차를 이용할 일은 점점 많아졌고 일종의 프리랜서 드라이버였던 아저씨는 거진 우리 멤버가 되었다. 바닷가 마을로 조사갈 때도, 아이들 집을 하나 하나 방문할 때도, 휠체어를 배달할 때도, 방송팀과 꽝찌 전역을 누빌 때도, 멋지게 아오자이 차려 입고 행사에 갈 때도, 언제나 아저씨가 함께였다. 

드라이버와는 딱 차를 탈 때만 함께 하는 팀도 있지만 우린 모든 식사나 회식자리에 아저씨와 동석했다. 정부기관과 미팅이 끝나고 식사초대를 받으면 우리와 함께 온 운전사분도 같이 하겠다고 했다. 일하는 거면 모를까, 적어도 우리끼리 맛난 거 먹는 동안 기다려달라고 하는 건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께 하면서 아저씨도 단순히 운전사 노릇을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띠엔 아저씨의 장점 중 하나가 센스가 좋다는 것이다. 우리끼리 낑낑대던 문제를 아저씨가 해결해 주는 경우도 많았다. 아저씨는 적극적으로, 그러나 선을 지키면서 존재감을 키웠고 어떤 면에 있어선 일종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아이의 집까지 함께 휠체어를 나르고 조립한 것도 아저씨였다. 

아마 아저씨도 좋았을 것이다. 젊은 여자애들이고, 무리한 요구도 없고, 술 먹고 추태부리길 하나 돈 가지고 재수없게 굴길 하나. 차 안에서는 항상 아저씨와 수다삼매경이다. 동하에 나가면 간 김에 아저씨도 볼일을 보는데, 일하는 동안 아저씨가 기다렸듯 우리도 아무 말없이 아저씨를 기다렸다. 거기다 외국인이라기엔 너무 현지 적응한 우리 아닌가. 아저씨 집에 식사초대를 받았을 때였는데, 식사 준비가 거의 되자 아저씨가 바닥에 있는 돗자리를 주섬 주섬 치우고 무거운 탁자를 가운데로 옮기기 시작했다. 여기선 바닥에 돗자리 깔고 그릇을 펼쳐놓고 밥을 먹는데 보아하니 탁자를 식탁으로 쓰려는 것 같다. 혹시 지금 나 때문에 저기서 밥 먹으려 하냐고 통역한테 물어보니 그렇다길래, 아이고 지금 뭐하냐고, 내 스타일 모르냐고, 손사래를 치며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식으로 먹어야죠!’ 했다. 이 얘기를 듣고 아저씨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무엇보다 아저씨는 우리가 하는 일을 마음에 들어 한 것 같다. 아니, 우리 일에 아저씨도 함께 한다는 걸 좋아한 것 같다. 아저씨의 아버지는 젊었을 때 보건소장으로 일하셨고 우리 사업의 중심인 재활센터의 초대 센터장이다. 아버지가 하신 일과 관련도 있고, 간단히 말해 그냥 운전만 하는 운전사보다는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보람이 있으셨던 듯하다. 이웃에 장애가 있는 여자애가 부모없이 할머니와 함께 사는데 도와줄 방법이 없겠냐며 우리를 데려갈 정도였다.

언젠가부터 아저씨는 정식으로 우리에게 고용되어 우리 일만 하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했는데, 이 일 저 일 다 받아 뛰는 것보다 돈은 조금 적게 벌지라도 안정적이고, 무엇보다 우리와 함께 다니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었다. 당장 아저씨를 고용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지만 나 역시 본격적으로 사무실을 차리고 안정이 되면 아저씨와 함께 할 생각이었다. 

이왕 좋은 말 쓰기로 한 거 좀 더 얘기하자면, 업무적인 면에서 아저씨가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돈 계산이 깔끔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거래든 마찬가지겠지만 정가가 없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협상. 외국인으로서 일할 땐 이 조정이 더욱 중요해진다. 간단히 말해 일에서건 생활에서건 항상 ‘우리를 등쳐먹지 않는 좋은 거래처’를 뚫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아저씨는 이른 바 외국인 특수없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현지 가격 선에서 받으셨다. 싸게 받지 않는다는 게 특히 좋았다. 싸면 당장은 좋겠지만 장기적으로 함께 일할 때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돈 주고 쓰는 입장에서 항상 미안해 해야 하고 다른 요구사항이 있어도 제대로 말할 수 없다. 처음엔 호의로 싼 값을 받더라도 그게 지속되면 아저씨 역시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다 알고 그러셨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아저씨와 함께 하면서 돈 문제로 골치 아플 일은 전혀 없었고, 이게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할 때 얼마나 큰 수고를 더는 지는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아저씨와 다니며 일만 한 건 아니었다. 바쁜 일정 중간에 카페에서 쉬기도 하고, 아침에 그저 커피 한 잔 하자고 만나기도 했다. 숙소 식당에서 닭 요리에 맥주 한 잔 곁들이기도 하고 아저씨 식구들과 멀리 나가 짜우도 먹었다. 이 짜우가 참 추억이 많아서, 나와 치료사가 짜우를 좋아하는 걸 안 아저씨는 일과 상관없이 우릴 태우고 그야말로 짜우 맛집 탐방을 다녔다. 꽝찌를 떠날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개인용도로 아저씨 차를 탔는데 출발하면서부터 펑펑 울기 시작한 내가 조금 진정하자 아저씨가 건넨 말은 “짜우 사줄 테니 먹고 가자”였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꽝찌와 훼의 중간쯤에 차를 세우고, 한적한 길가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말없이 짜우를 먹었다. 꽝찌에서의 마지막 짜우는 별로 맛이 없었다. 



외국에서 산다면, 거기다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내 사람’을 만들어 나가는 게 꽤 중요한 부분인데 이게 참 쉽지가 않다. 서로 간의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사실 어느 정도 운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한국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 띠엔 아저씨를 만난 건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떠나는 날을 앞두고 주변에 인사를 돌리면서, 아저씨께는 항상 피우시는 담배 한 보루를 포장해 편지라기엔 뭣한 짧은 쪽지를 붙여서 드렸다. 내가 떠난 뒤 꽝찌에 갔던 애가 전해온 바로는 항상 갖고 다닌다는 이 쪽지를 보여주시며 내가 있던 때의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보다 뒤에 새로 통역이 된 베트남 애가 연락을 해왔을 때 첫 머리는 ‘띠엔 아저씨가 언니 보고 싶대요’였다. 



베트남에 갔던 애가 찍어 보낸 내 쪽지. 사실 내용은 별 거 없다.


띠엔 아저씨

덧글

  • ㅁㅁ 2015/02/26 06:32 # 삭제 답글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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