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꽝찌 어딜 가든 마찬가지지만, 쯩썬가는 길은 유난히 멀게 느껴진다.

쯩썬은 다녀온 사람들의 호불호가 나뉘는 곳이다. 호는 입구의 대형 향로가 아주 볼만하다는 의견이고 불호는 그냥 묘지라는 의견. 후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 전쟁 희생자들이 모여있는 쯩썬은 간단히 말해 우리 현충원과 비슷하다. 현충원도 호국영령에 대한 특별한 마음가짐이 없는 이상 가족이나 관계자만 방문하는 곳이 아니던가. 나는 가족도 관계자도 아니지만, 전쟁에서 파생된 비극과 뗄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자 꽝찌 주민으로서 방문했다.
쯩썬 입구에는 향을 파는 사람들이 많다. 베트남의 향은 자줏빛에 가까운 진한 핑크색에 크기도 엄청 크다. 우리도 한 묶음 사고, 운전사 아저씨도 한 묶음 사신다. 한 묶음이 많아 보이지만 결국 다 쓰게 된다.
쯩썬은 현충원처럼 평지가 아니라 산 전체를 깎아 만든 곳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차량 진입이 가능하다. 적당한 곳에 세워두고 아저씨와 그 유명한 대형 향로에 가서 향을 피우고 아저씨가 하는 대로 따라서 예를 올렸다.

그리고 쯩썬을 둘러보면 된다.
묘지라고 해서 무섭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이날 날씨가 흐려서 왠지 더 숙연한 분위기가 있었다. 탄꼬꽝찌에서 위령제를 하며 통곡하는 사람들 틈에 껴서 울고 난 뒤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엄청난 크기의 쯩썬 부지에는 지역별로 수백, 수천 개의 묘가 모여있는데 산이다보니 한 눈에 들어오는 건 아니고, 걷다가 한 구역 보고 계단 올라가서 또 한 구역 보고 하는 식이다.


DMZ도 그렇지만 사실 이런 곳은 방문객의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단순 관광을 하러 왔다면 이게 뭐야, 볼 거 없네 할 수도 있겠으나... 말소리조차 조심스러운 고요한 묘지 사이를 걷다 보면 수십 년 전 그 시간을, 그 비극을 되새김질 하게 된다. 1만2천여 개의 묘비 중에 역시 눈에 들어오는 건 지금의 나와 꼭 같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살아있다면 흰머리 어르신이겠지만, 멈춰진 시간 속에 잠들어있는 이들은 40여 년을 건너 이 자리에 선 내게 동갑내기로 느껴졌다. 그래서 더 한스러웠다.
우리는 꼭 봐야 하는 구역이 있는 게 아니어서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근데 문득 정신차려보니 아무래도 산길로 접어드는 느낌인 것이다. 구역들이 워낙 오르락 내리락 흩어져 있는 터라 걷다 보면 나오겠지 했건만 다음 구역은 고사하고 평탄했던 길마저 울퉁불퉁해졌다. 오르막길 끝에 가면 뭐가 보일까 싶어 좀 더 올라 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는데, 이런 광경.
(클릭하면 커짐)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던 어마어마한 울창함이 사진으로 전해질까 모르겠다. 부러진 철망과 무너진 돌담 너머로 펼쳐진 수해樹海를 보고 있자니 평화로운 대자연의 숨결...은 커녕, 어디선가 투다다다 헬리콥터가 날아오는 것 같고 중간 중간 폭발로 인한 화염이 올라올 것 같고 나무 사이 사이에 몸을 숨기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을 것 같고. 지난 시간 사람의 손이 닿은 곳들은 전쟁의 흔적이 거의 지워졌는데, 전쟁 전과 같은 모습으로 그저 자라고 자란 나무들이 오히려 과거를 펼쳐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머릿 속에서 펼쳐지는 스펙타클함에 비해 기분은 점점 더 가라 앉았다.
특별한 볼거리를 찾는다면 쯩썬은 맞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은 관광지가 아니다. 다만 이곳의 진짜 볼거리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쯩썬에서 내려와 입구 근처의 가게에 자리잡고 앉았다. 강행군 없이 중간 중간 티타임을 갖는 것에 운전하는 아저씨도 꽤 만족스러운 눈치다. 제가 이곳 스타일을 좀 알지요. 커피로 숨 좀 돌리고 있는데 저 멀리 차가 한 대 서더니 백발 할아버지가 내린다. 빳빳한 군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할아버지는 다가온 아주머니에게 향을 한 다발 사서 쯩썬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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