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사 준비를 하는 이 평범한 사진을 좀 많이 좋아한다.
이때의 꽝찌는 좀 북적거렸다. 평소엔 나와 치료사, 통역 이렇게 세 명 뿐인데 프로젝트를 위한 조사팀과 지상파 방송을 위한 촬영팀이 함께 들어오면서 간만의 손님맞이에 정신이 없었다.
조사 일정과 촬영 일정이 겹칠 땐 그야말로 대인원이 되어 밥 먹는 것도 큰일이었다. 이날도 식사 때가 지난 어정쩡한 시간에 식당에 가게 됐다. 당장 쌀 씻고 재료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되는 상황인데 인원은 많고 아줌마 손은 두 개 뿐이고. 목 마른 놈이 우물 파고 배고픈 놈이 밥 짓는 법이라, 결국 아줌마를 도와 식사 준비를 하게 됐고 그 와중에 찍힌 사진이 이것이다.
상황이 웃기기도 했지만 그래서 이 사진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사진에서 고기를 굽는 사람은 현지 조사를 위해 잠시 들어온 한국인 의사고, 정장바지 걷어붙이고 채소를 다듬는 사람은 하노이에서 파견된 중앙정부의 엘리트 공무원이다. 이 광경을 즐겁게 구경하고 있는 두 사람은 나와 나이 어린 현지 통역이다.
보통이라면 일정 내 사소한 것까지 현지 코디가 모든 세팅을 하고 '한국에서 모셔온 의사'와 '우리가 잘 보여야 하는 중앙 공무원'을 안내했을 거다. 하지만 이때 둘은 쭈그려 앉아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고 일부는 사진찍고 놀았고 일부는 이상한 게임을 했으며 일부는 피곤에 지쳐 눈을 붙였다. 그러니까, 내가 이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우리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만들어 온 우리 '팀'의 느낌을 잘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멤버 구성 자체가 독특하다보니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우리 팀은 내가 경험한 조직 중 가장 수평에 가까운 구조였다. 이 팀이라는 건 표면적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단체 내의, 그러니까 회사에서 월급받는 직원들의 팀을 말하는 게 아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일부는 단체 안에서 일부는 단체 밖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만들어온 게 이 베트남 프로젝트였고 때문에 서로 상사와 부하의 관계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구조의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나였다. 현지 파견이 결정나면서 경험 있는 주변 분들에게 공통으로 들은 조언이 '사무국과의 마찰' 부분이었다. 어쨌거나 얼굴 안보고 각자의 상황에 맞춰 일을 해야 하니 마찰이 없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난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 사업을 총괄하는 팀장님은 현지에서의 내 의견을 항상 존중했고, 전화나 이메일로 소통하기에 부족한 부분은 출장으로 만났을 때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현지 정부와 한국을 다이렉트로 연결하는 베트남인 팀원은 언니였고 호치민에 있는 코디네이터는 삼촌이었다. 치료사와 통역은 내가 관리해야 할 파견자와 현지직원인 동시에 챙겨야 할 동생들이었다.
이 한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베트남 파견은 그저 업무가 아니라 내 삶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가족같은 팀에서 정이 쌓이고 어쩌고 뭐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혹은 개인에 대해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자체가, 결국 파견자인 내게 현지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다. 수평적 관계라 단순히 서로 대하기 편하고 장난치기 쉬웠다는 게 아니라, 이런 관계를 통해 부차적인 혹은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덜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에 총력을 다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어쨌든 이런 팀의 분위기는 우리를 거쳐간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 촬영차 함께 했던 피디님과 촬영감독님은 쓰레빠 끌고 아침시장에 가서 알아서 밥을 먹었다. 중앙에서 어깨에 힘 좀 주고 내려온 공무원은 촬영감시가 아니라 촬영보조가 되어 각종 마찰을 중재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역할을 했다. 돈벌이 수단으로 별생각없이 시작한 기사 아저씨는 우리 전용 아저씨가 되어 함께 휠체어를 나르고 조립했고, 한국에서 온 대학교 담당자는 어떻게든 우리와 계속 하고 싶다고 연락이 온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도 뭔가 좀 다른 우리의 분위기에 즐거워했고, 만족했다.
무엇보다 나는 우리 만의 분위기를 좋아하고 그 속에서 '꽝찌'를 경험하고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릴지언정 맞는 길을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 팀에 속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으며, 양심을 지키며 열정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그리고, 이후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런 상황 속에 놓이기는 쉽지 않을 거란 걸 20대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이 모든 걸 놓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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