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쎄옴 아저씨와 친해지는 방법 낯선 일상

사실 동남아 여행자들에게 베트남이 그다지 선호되는 나라는 아니다. 워낙 관광대국인 태국을 제외하고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은 왠지 순수하고 때가 덜 타고 친절한 듯한 이미지가 있지만 베트남은 뭔가 돈을 뜯어낼 것 같고 속일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물론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경우도 많고. 

당했던 많은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한가지 덧붙이자면, 베트남은 외국인 정찰제, 그러니까 외국인 전용 바가지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나라라는 것. 물론 법적으로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확인을 안 해봐서 모르겠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유적지나 관광지만 봐도 내외국인 입장료에 크게 차이가 있고 뭣보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그렇게 각인되어 있다. 아마도 전쟁 이후부터라고 생각되는데, 그러니까 베트남 사람이 만동 내고 외국인이 2만동 내는 게 바가지가 아니라 그냥, 정말 그렇다는 것이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곳곳에선 외국인에게 비싸게 받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뭐 각인된 문화 때문이든 그냥 외국인 등쳐먹으려는 심산 때문이든, 어쨌든 이 바가지를 가지고 얘기하는 건 입 아플 정도로 적게든 많게든 경험없는 사람이 없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쎄옴, 즉 오토바이 택시 가격 흥정. 덜컥 타기는 싫고, 거리도 모르고 적정가에 대한 감도 없으니 깎아도 의심스럽다. 다른 의미지만 사는 사람에게도 쎄옴 흥정은 쉽지 않다. 평소엔 괜찮지만 심리적으로 지쳐있을 땐 흥정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꼴 저꼴 보기 싫어 차라리 돈 쓰고 택시를 탈 때도 있지만 그것도 도시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여린처럼 별다른 수단이 없는 동네에 살려면 마음 맞는 쎄옴 아저씨 섭외는 필수다.

나도 쎄옴 가격흥정 때문에 별의별 일을 겪었지만 굳이 안 좋은 경험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쎄옴을 항상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겁게 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봤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다만 생각해보니 베트남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쎄옴을 통해 배운 점이 있어서 말이다. 



꽝찌에 정착한지 5개월 정도되던 어느 날 당일치기로 훼에 다녀와야 했다. 공식적으로 여섯 번째 훼였는데 버스를 타고 훼 터미널까지 간 뒤 훼 터미널에서 시내까지, 볼일을 마치고 시내에서 훼 터미널까지, 꽝찌에 도착해 동하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총 세 번의 쎄옴을 타야 했다. 

이 단순한 코스가 기념비적이었던 이유는 처음으로 완벽하게 현지인 가격을 냈기 때문이다. 이미 내가 적정 가격선을 아는 지역이기도 하고 현지 지인들에게 얼마 정도에 이용하는지 들은 코스들이기도 했지만 아는 가격과 내는 가격은 항상 다르니까. 외국인치고 괜찮은 가격이 아니라 정말 베트남 사람과 똑같이 냈다. 거기다 두 배 이상 부르는 가격을 흥정하는 것조차 매우 간단하고 쉽게 넘어 갔다. 

방법은 별 거 없고 단 두 가지, 미소와 현지어였다. 기가 막히는 가격을 불러도 웃었고, 부족한 현지어로 대화를 시도했다. ‘비싸다’는 단어만 연발하는 게 아니라 ‘이 가격으로 해주실 수 없나요?’ 하는 거다. 그러니까 ‘바가지 씌우는 베트남인 VS 그런 베트남인이 짜증나는 외국인’이 아니라 ‘사람 VS 사람’으로 대하는 거다. 그렇게 대했을 때 그쪽 역시 날 한 건 올릴 수 있는 외국인이 아니라 베트남에 호감이 있는 외국인으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현지어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는 점이 있지만 나도 전혀 유창하지 않다. 떠듬떠듬 단어 위주로 말했지만 그렇게 다가가니 아저씨들 역시 꼭 바가지를 씌우겠다는 일념이 아닌 이상 웃으며 넘어가 줬다. 그리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결혼은 했는지, 녹음기마냥 동네 사람들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아저씨도 베트남어를 조금 하는 신통방통한 외국인을 만나 즐겁고, 나 역시 아저씨가 날 ‘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우연히 알게 되어 훼에 갈 때마다 내 전용쎄옴이 되어준 아저씨, 나의 여린과 동하 구간을 전담했던 센터 앞 아저씨, 여하이 가정방문을 내내 함께 한 아저씨, 페인트용 붓부터 빗자루까지 자질구레한 요청에도 불만없이 모든 걸 들어준 아저씨... 쎄옴 아저씨들과의 이야기만 가지고도 글 몇 편은 너끈할 정도로 추억이 많다. 아저씨들과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콧대 높은 외국인 코스프레 따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을 주고 편의를 제공받는 관계지만 항상 감사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훼나 동하도 아닌 여린에서, 우리 사정 다 알고 어떤 일을 하는지 다 알면서 끝까지 비싸게 받던 아저씨도 있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지만 모든 쎄옴 아저씨들이 좋다는 게 아니다. 다만 개인차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시각을 좀 바꿔보자는 것이다. 바가지를 씌우는 그네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대했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바가지를 안 쓰고 돈을 협상해야 하는 건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지 물가를 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외국인을 봉으로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싼 나라라고 부담없이 돈을 쓴 외국인들이 물가를 올려놓고, 그 물가에 맞춰 현지에서 또 물가를 올리는 악순환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주절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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