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엔득은 심한 척추측만증으로 보행이 불가능한 8살짜리 여자아이다. 지능이나 상반신에는 이상이 없어서 학교에 다니고 있고, 몸이 아프다 보니 예민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나름 밝게 생활하고 있다.
아빠가 안아서 옮겨주지 않으면 이동이 불가능한 아이였는데 작년 말에 지원해 준 휠체어는 그야말로 히엔득의 날개가 됐다. 손으로 바퀴를 돌려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직접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히엔득 몸보다 큰 휠체어가 오는 바람에 시장 가서 용접하고 옷가게 가서 가죽 자르고 꼬매는 등 작업이 필요했지만(그때 왔던 한국 의사분이 땡볕에 휠체어 들고 돌아다니며 결국 해냈다) 지금까지 히엔득에게 가장 소중한 발이 되어주고 있다.
사실 히엔득네가 특별한 이유는 부모 때문인지도 모른다. 히엔득 아빠는 역사, 엄마는 문학 선생님이다. 장애아동 부모들 중에서는 손꼽히는 엘리트인데다 두 분 다 아이에 대한 열정이 엄청나서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맺어왔다. 아무리 바빠도 부모교육은 절대 안 빠지고, 교육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아이를 위해 해보는 것도 히엔득네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두 분이 너무 밝다는 것. 정말 어떻게 이렇게 만나 부부가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 밝고, 따뜻하고, 유쾌하다. 사실 처음엔 히엔득 상황 때문에 오히려 과장된 즐거움으로 포장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냥 원래 성격이 두 분 다 그렇다. 아빠는 농담을 생성해내기 바쁘고 엄마는 깔깔 웃기 바쁘다.
1월 말의 어느 날, 파견치료사의 귀국을 앞두고 히엔득네 저녁을 먹으러 갔었다. 가정집에 초대받는 일이야 많지만 그날의 기분이 아직도 잊혀지지를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열심히 달려 도착한 작고 낡은 집. 같이 식사준비를 하고(사실 거들기만 하고), 베트남의 이모저모에 대해 때론 진지하게 때론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컴컴해진 길을 핸드폰 불빛에 의지하며 자전거를 끌고 터벅터벅 내려오던 그날.
오랜만에 잔뜩 먹은 집밥이 너무 맛있어서, 득네 아빠 엄마랑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눈 얘기들이 너무 즐거워서, 휠체어에 앉아 열심히 숙제하고 요리조리 돌아다니는 득이 너무 고마워서, 어두컴컴한 오솔길을 따라 걷던 길이 너무 푸근해서,
나는 정말로 화가 났다.
왜 이 시간을 이어갈 수 없는지. 왜 갑자기,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은 이곳의 삶이 행복하게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억울함과 분노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현실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걸 빨리 털어버리는 게 지금 내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다.

집에 가니 딱 이 상태로 앉아 있던 득.

야채를 다듬고

가스를 아끼려고 나무 때서 물 끓이는 득네 아빠

좋아하는 것들 뿐인 진수성찬. 정말 너무, 너무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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