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 이야기 하나: 우리가 만들어 온 것은 업무기밀

여린현 장애아동 재활센터에 등록된 아이들의 증상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일시적인 외과 치료가 아닌 지속적인 재활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다. 재활치료라는 게 워낙 눈에 보이는 빠른 효과가 없는 분야인데다 한국에서처럼 체계적인 치료가 되질 않다 보니, 부모들이나 아이들이나 센터에서 일하는 분들이나(두 명 뿐이지만) 그냥 어디 외국단체에서 오면 선물이나 나눠주고 평소엔 부모대신 애들 맡아주는 보육센터 쯤으로 생각해왔다.

여기 들어온 뒤 매달 한번씩 꼬박꼬박 장애아동 부모교육을 진행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한국의 유명한 의사가 한번 와서 봐주는 것보다 집에서 부모가 매일 꾸준히 운동을 시키는 게 훨씬 낫다는 걸 인지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이를 눕히거나 안는 방법에서부터 각종 근육을 운동시키는 방법까지 다양한 내용으로 강의를 했고, 평소 센터에 오지 않는 아동과 부모의 상황을 체크하는 것 역시 부모교육하는 날 이루어졌다.


사실 이곳 사람들은 이런 교육에 익숙한 편이다. 공동회관 등에 모아놓고 어디 외국 단체에서 선진의학 혹은 기술을 전해준다고 교육을 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러니까, 이렇게 열리는 교육에 참가해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교통비를 받아가는 게 특별할 것 없다는 말이다. 

보통 외국 단체들이 와서 교육을 하면 1인당 10만동, 20만동씩 돈을 준다. 교육까지 시켜주는 마당에 왠 돈이냐고 하겠지만, 필요성을 못 느끼는 주민들을 일단 모아야 하니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었던 것. 이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다보니 처음 현지 정부에 교육 계획과 예산을 제출할 때도 이 비용이 포함되어야 했다. 대부분 집이 멀고 식사시간도 애매한 게 사실이니까 우린 교통비+중식비로 5만동씩 책정했는데, 다른 단체에 비해 교육비가 항상 적다는 찌아줌마-센터 관리자-의 말에 내가 순간 욱해서 정색했던 적이 있다. 걔넨 어쩌다 왔다 가는 거지만 우린 매달 하잖아요!


그래도 돈이 더 들면 어떠랴, 돈 받으러 오면 어떠랴 싶었다. 돈 받으러 왔다가 하나라도 듣고 가면 좋은 거 아닌가. 뭔가 아이한테 도움되는 한 가지라도 알고 가면 좋지 않겠나. 근데 진행하다보니 문제는 돈뿐만이 아니었다. 일단 아무리 쉽게 해도 수준이 높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농사만 지어온 분들이 태반이라 연필잡고 종이에 뭔가 써가며 공부하는 자체를 힘들어했다. 공부 경험이 없으니 시간도 문제였다. 한 20분 정도 이론 강의를 하다 보면 저 먼 곳을 아득하게 바라보시거나 자꾸 눈을 게슴츠레 뜨는 분들이 속출했다.

이제 목표는 ‘차별화’였다. 알아듣든 말든 잘 됐다고 보고서 쓰면 겉으론 문제없겠지만, 한 두 명이라도 뭔가 가져갈 수 있는, 진짜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육이 이들에게도 우리에게도 필요했다. 우리는 대충 시간 때우고 사진 촬영하고 예산 집행하는 겉핥기식 행사를 진행하려고 이 먼 곳까지 들어온 게 아니니까. 어쩌면 부모교육의 의미는 우리에게 더 중요했는지도 모른다.

여튼 그래서 매 교육마다 파견 물리치료사와 함께 방향을 수정하고 새로운 걸 짜내야 했다. 치료사로선 나름 쉬운 걸 하는데도 일반인인 내가 보기엔 어렵고 낯선 것들이 많았다. 총괄하는 나는 계속 좀 더 쉽게, 지루하지 않게 하라는 주문을 끊임없이 했고 치료사는 어떤 아이템이 재밌을지, 도대체 글씨 쓰는 것도 익숙치 않은 사람들의 교육 평가는 어떻게 매겨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통역직원의 주된 업무는 ‘무조건 쉽게’ 번역하기였다. 당장 기억은 안 나지만 쉬운 예를 들자면 ‘근력’을 ‘근육의 힘’으로 바꾸는 식. 한국인이어도 의료분야 용어는 잘 모르듯이(근력은 굳이 의료용어는 아니지만) 베트남인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까, 최대한 이 사람들에게 친숙한 단어를 사용하는 게 숙제였다.

이론교육은 대폭 줄어들었고 실습교육이 늘어났다. 농사지으랴 애 돌보랴 지친 부모들을 위한 운동도 추가됐다. 중간 중간 집중을 높이고 잠을 깨우기 위해 이런 저런 대화도 시도했다. 애 낳을 때 어땠는지, 집에서 이런 문제 있을 때 어떻게 했는지, 묻기만 하면 온 사방에서 엄마들이 시끌시끌 나는 어땠고 너는 어땠고 난리였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떠들고 나면 다시 집중. 쉬운 이해를 위해 아이들을 예로 든다. “쯔엉 엄마 어딨지? 쯔엉처럼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렇게 해야 되요.” “이런 운동은 다리가 불편한 허우 같은 애들에게 좋아요. 허우 엄마 알겠죠?” 그러다가 지루해진다 싶으면 치료실로 옮겨서 단체 피트니스. 부끄러워 하는 부모들을 잡아 끌어 운동시키고 잘 하는 사람들은 경쟁도 시켰다. 

우리 교육이 아이를 좀 더 잘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시간이자 함께 즐거워하며 서로를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기를 바랐다. 부모 대 부모든, 우리 대 부모든. 그리고 그 바램은, 아마도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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