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화에서의 평범한 주말 낯선 일상

주말을 이용해 통역직원의 고향인 리화에 다녀왔다. 
어느 가이드북에도 나오지 않고 검색에도 걸리지 않는 리화는 꽝빈성 보짯현의 한 마을.
10년 전엔 작은 홍콩이라고 불렸다는 둥 고향자랑을 늘어놓는 그녀의 말에 혹한 건 아니고,
파견치료사와 통역직원이 같은 날 떠난 후 혼자 남아 느낄 데미지를 좀 줄이고 싶었다.


평소에 통역직원이 5~6만동 내고 탄다는 로컬버스를 각자 15만동씩, 30만동 주고 탔다.
이전에도 썼듯 설날 전, 특히 북쪽으로 가는 버스는 부르는 게 값.
설날 특수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하다.


리화의 첫 인상은 단 하나. 
...생각보다 발전했잖아!!!
Xa라고 해서 작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나름 T.T.인 우리 동네보단 구릴 줄 알았는데..
(베트남은 성tinh-현huyen-싸xa 순으로 행정구역단위가 내려온다.
내가 있는 곳은 꽝찌성-여린현-T.T.여린. Xa 중에서 huyen의 중심이 되는, 좀 발전한 동네에 T.T.가 붙는다)

깜빡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우리 동네에 너무 익숙해져서 잊고 있었다.
평소에는 거의 못 느끼는데 이렇게 다른 동네에 오면 여실히 느낀다.
바로 옆 빈린현을 가도 그렇고.. 정말이지 여린보다 상태 안 좋은 동네를 찾기가 쉽지 않군.
'여린이랑 비교하지 말라'며 기막혀 하던 통역직원이 그런다.
"그래도 여린이 그런 곳이니까 우리가 거기서 일하는 거잖아요."


3일 동안 때론 빈둥거리고 때론 집안일을 하며 정말 집에 있는 것처럼 지냈다.
낮잠을 밤잠 정도로 푹 자고, 570페이지짜리 책 한 권을 다 읽고, 밤에 잠깐 바다가서 바람쐬고,
음악듣고, 베트남에 온 뒤 처음으로 KBS World 채널을 보고,
매끼마다 설거지하고, 직원 도와서 빨래 하고, 어머니가 시킨대로 장봐오고, 돗자리 빨고.
돗자리는 이곳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물건인데(식사도 돗자리 위에서, 손님이 와도 돗자리 위에서, 잠도 돗자리 위에서)
설을 앞두고 하는 대청소에 집에 있는 돗자리들을 빠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솔로 박박 문지르고 거품이 빠질 때까지 물을 퍼붓고 호스로 뿌려대고 마당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서
커피한잔 하러 동네에 나와보니 집집마다 돗자리를 담장에 걸고 말리고 있어 웃음이 났다.

그래도 중요한 건 베트남에 온 뒤 처음으로 '집'에 머물렀다는 것.
이래저래 초대받아 많이 가긴 했지만 실제로 가정집에서 잠을 자고 생활한 건 처음이었다.
이곳에 온 뒤 형태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항상 '숙박업소'에 묵어 왔고(이제 호텔은 다 거기서 거기 같다),
여린에서 역시 일종의 게스트하우스의 방 하나를 장기계약해서 쓰는 상황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 뭐랄까.. '떠돌이'까지는 아니지만, 안정적인 느낌은 아니니까.
간만에 느껴보는 집에서의 생활이 좋았다.


설을 앞두고 미묘하게 흥분된 분위기는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은 북적거리고 평소에 팔지 않는 것들을 팔고.
뭣보다 재밌는 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시장이나 길에 있는 본인의 가게 앞에서(즉 길에서) 잔다는 거다.
설을 앞두고 기승을 부리는 도둑으로부터 물건을 지키기 위한 거라니,
역시 동네가 좀 번화할수록 범죄도 많은 모양이다.


둘째날까지는 옆집에서 상을 치르느라 종일 음악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선 다 병원 장례식장에서 하니까 있어도 모르고 지나가는 것 같은데,
여긴 아직 전통방식을 따르며 집에서 치르다보니 베트남에 와서 장례를 꽤 많이 봤다.
매번 지나가면서 보다가 이번엔 상여 나가는 것까지 제대로 봤는데 앞의 꽃상여에 할머니의 영정 사진이 있었다.
뒤따르는 가족들이 펑펑 우는데 세상에, 나도 눈물이 찔끔 났다. 아마도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서였을 것이다.


어머니도 하루종일 집을 들락날락하시며 바쁘셨는데 직원 말로는 이게 다 설날 때문이라고 한다.
그나마 집에 가장 오래 계셨던 건 제사를 드릴 때.
설을 앞두고 제사를 드린다고 해서 난 조상한테 드리는 우리네와 비슷한 제사인 줄 알고
나름 종가집 장손으로서 한국의 제사와 비교분석 좀 해보려 했더니만,
그게 아니라 부엌신에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로 하는 거란다.
일종의 토속신앙인듯 한데, 그래서 제사도 부엌에서 지내고 아들이 없어도 어머니 혼자 가능하다.
세 분이라는 부엌신에게 제를 지낸 뒤 종이로 만든 돈, 신발, 물고기 등을 마당에서 태우고
결정적으로 미리 사와서 제사에 쓴 금붕어 세 마리를 강에 가서 방류한다.
신들이 저 금붕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지난 1년 간 있었던 일을 보고한다고.
...재밌잖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올 땐 7만동을 냈다. 같은 거리인데 방향에 따라 두 배 넘는 차이가 난다니)
드디어 눈물이 났다. 
할머니 생각 때문은 아니고, 여린을 떠나올 때부터 꾹꾹 참고 눌러놨던 게 터진 거다.
지난 1년 간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물리치료사와 현지직원은 1월 31일자로 업무가 종료됐다.
두 사람이 떠나는 2월 1일 아침, 혼자 남을 자신이 없어서 현지직원을 따라 온 거였다.
물리치료사가 떠날 때 같이 운 뒤로 계속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정신없이 은행가고 짐싸고
리화에서도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잊고 지냈었는데,
왁자지껄했던 휴일을 뒤로 하고 혼자 돌아오는 길에 드디어 실감이 났다.

헤어져서가 아니다. 개인적인 만남이야 다시 있을 거니까.
다만 우리의 시즌이 끝났다는 것, 
1년간 땀흘리며 일궈 온 우리의 모든 것이 앞으로 어찌 될 지 모르는- 상상도 못했던 상황에서 시즌을 끝낸다는 것,
그게 못내 억울하고 아쉽고 슬픈 거다.
시간이 흐른 뒤 우리의 시간을 추억했을 때 그저 즐겁고 웃기고 아련할 줄만 알았지,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바늘로 찔리듯 콕콕 쑤시는 상황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좋은 마무리라는 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런 혼란을 잔뜩 안고 귀국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 강이 바다로 이어진다.




반록 튀겨서 느억맘에 찍어 먹는 간식. 반록의 느낌이 떡꼬치랑 진짜 똑같아서 두 번이나 먹었다.




갑자기 침입한 현지직원의 조카 빗(오리라는 뜻의 애칭)과 쌍동이 친구들 옌비, 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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