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다가온다 낯선 일상

1. 
최근 동네 분위기를 말하자면.. 뭔가 싱숭생숭 뒤숭숭. 이게 다 설날 때문이다.
(이제서야 쓰고 있지만 이 분위기가 된지 한 2주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집앞으로 지나가는 1번 국도(하노이~호치민을 잇는 남북 직진 도로)에 지나가는 차량도 엄청 늘었고,
핸드폰 가게 앞에는 매화나무를 파는 한시적 가게가 들어섰다.
베트남에서는 설에 매화나무나 감귤나무 등으로 집을 꾸미는데 
이게 적게는 몇백만동에서 몇십억동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근데 중요한 건.. 매화나무를 키우기가 너무 어려워서 딱 한 철 쓰고 죽어버린다는 것!
돈도 아깝고 너무 비싸다보니 그냥 나뭇가지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은듯 하다.

시장에는 조화로 만든 꽃화분이 쌓여가고 설날 선물세트가 그득그득하다.
사람들도 뭔가 잔뜩 사고, 싣고 가고, 나눠 주고, 매우 바빠 보인다.
거기다 자기가 속한 온갖 커뮤니티에서 술자리가 연일 이어지는 분위기.
신정이 별로 의미없는 곳이다보니 지금이 진정한 연말연시 되겠다.
외국인으로서 진짜 헷갈리는 건 한 일주일 전부터 사람들이 음력을 기준으로 날짜를 말한다는 것이다.
3일에 만나자고 하면 2월 3일이 아니라 음력 1월 3일을 말한다. 

술자리가 많다보니 사건사고도 끊이질 않는다.
안그래도 통행량이 많아졌는데 술마시고 운전하는 오토바이가 많다 보니 이래저래 난리.
며칠 사이에 오토바이 사고를 두 건이나 들었는데, 한 건은 타고 있던 형제 둘이 다 죽었다고..

암튼 온 동네가 흥분상태인 것만은 확실하다.



2. 
설날 선물을 주는 풍습 덕분에 요 며칠 새 엄청난 돈이 깨졌지만 그만큼 받기도 했다.
거기다 함께 있던 치료사가 활동을 종료하고 한국에 돌아가는 시점과 겹치다보니
이래저래 겸사겸사 꽤 많이 받았다. 특산품 과자라던지, 커피라던지..
우리 취향보다는 우리 동네 사람들 취향을 반영한 선물들. 
민은 (아니 실은 민의 엄마는) 우리로 따지면 팬시점에서 산 미묘한 연필꽂이를 줬다.
태엽을 감으면 오르골 비스무레한 소리가 나며 관람차가 돌아가는 나무 연필꽂이.
라고 쓰니까 되게 예쁘고 좋을 것 같지만.. 그냥 난감 그 자체다.

현지 정부기관의 한 담당자는 뭔가 멋들어진 글씨가 휘갈겨진 나무판을 줬다.
나무를 통째로 깎은 판에 글씨를 새긴 건데, 정말 감사하다고 받았지만
이걸 한국에 어찌 가져가나..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외국단체 관계자들을 위한 신년파티에서는 술, 차, 커피, 과자가 담긴 꾸러미를 받았는데
요건.. 적당히 동네 사람들에게 돌아갈 예정. 역시 설날 선물은 돌고 도는 것이다.



3.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우리 동네에는 가로등은 있지만 불이 안 들어온다.
그래서 해가 진 뒤에 돌아다닐 땐 핸드폰 플래쉬가 필수인데,
얼마 전부터 '일부' 가로등이 '밤에 잠시'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정작 늦은 시간엔 꺼버리는 게 좀 웃기긴 했지만 그래도 설이라고 켜주나 했는데
오늘 띠엔 아저씨한테 들어보니 글쎄 여린현 인민위원회 주석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 중요한 소식을 이제야 듣다니.. 
암튼 그 사람 공약 비스무레 한 거라서 가로등을 밝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들어왔다면 얼마 안 가서 꺼질 게 분명해 보인다만. 여튼 요새, 동네가 조금 밝다.



4. 
다시 설날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 식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의 인사를
벳남어로 chúc mừng năm mới(쭉 멍 남 머이)라고 한다.
1월 1일 앞두고 그렇게 외웠건만 정작 그때는 쓸 일이 없었고 요새 좀 빛을 발하고 있다.
이거 말곤 ăn tết vui vẻ(안 뗏 부이 베), 줄여서 걍 '부이 베'라고 한다.
여기 살아도 사실 할 수 있는 말이 한정되어 있는데
이런 거 하나 배워두면 어딜가든 헤어지는 인사로 잘 때울 수 있으니 좋다.



5.
로컬버스에 대해 나중에 쓰겠지만 어쨌든 설 전후로 가장 별로인 건 교통비가 오른다는 것.
기본적으로 설 전에는 북쪽행이, 설 후에는 남쪽행이 비싸다. (돈벌러 남쪽 간 사람이 많다는 얘기겠지)
2~3배는 기본이라 아주 옴팡지게 낼 각오를 하고 타야 한다. 



6.
너도 나도 귀향하는 이 때, 나는 귀향은 커녕 혼자 남아 기나긴 설을 보내야 한다.
정신이 없다보니 딱히 계획 세울 여유도 없었고,
하노이에서 일하는 애가 훼까지 와서 설을 보낸다길래 만나기로 했다.

근데 이 얘기 했다가 재활센터 아줌마들한테 혼날 뻔 했다. 는 건 오바고,
아줌마들이 매우 강하게 얘기는 하셨다.
안그래도 혼자 남는 걸 아시는 분들이라 걍 여행간다고 했는데
대체 왜 가냐, 여기 아는 사람들 다 있는데 왜 여기서 안 지내냐, 아주 일장연설을 하셨다.

우리도 설에는 선물세트니 과일이니 사들고 인사드릴 분들을 찾아뵙긴 하는데
우리네와 닮은 베트남, 그것도 시골인 이곳은 그게 좀 심해서 
손님으로 찾아가고 주인으로 맞아주는 걸로 거의 한달을 지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업 때문에 얽혀있긴 하지만 이젠 인간적인 정이 쌓인 관계인데다
내가 거의 자식뻘이 되다보니 명절에 찾아뵙는 게 예의긴 한데,
이게.. 혼자 가려니 엄두가 안나서 말이다.
통역직원이 없을 때 가능한 말에는 한계가 있는데, 차라리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는 할 말이 많아도
이미 모든 걸 다 아는 아줌마들과 무슨 얘기를 더 해야 하나.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 것이다.

워낙 집에 초대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여기 사람들인데
초대와 방문이 일과가 되는 이 시기에 집에 한 번 들리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긴 하다.
그래서 요새 센터 아줌마들, 애 엄마들, 민, 심지어 정부관계자까지
내가 혼자 있는 걸 아는 사람마다 집에 오라는 말을 빼먹지 않는다.
심지어 한 관계자는 전화까지 했다. 설에 다른 거 없으면 자기 집 오라고..
(이 분은 미묘하게 내가 갑이고 이 분이 을인 관계라 피하고 있다. 난 차라리 을인 게 좋아...)

그래도 참 감사한 일이다. 이방인인 날 챙겨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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