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마인드맵 현실

1.

우리는 뭘까?

파견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본부에 있어도 ‘직장인’이나 ‘회사원’ 등의 단어는 뭔가 이상하다. 매달 급여를 받고 근무를 하고 있으니 ‘노동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사측이라 말할 수 있는 주체는 존재하지 않고, 급여노동자이긴 하되 우리가 바라는 건 급여가 아니다(생활인으로써 중요하긴 하지만). 기존 시민사회 특성을 이어받아 예전에 다녔던 어느 단체에서는 ‘활동가’라고 불리기도 했다. 활동가이면서 매일 출근하고 정해진 업무가 있어 내부에서는 ‘상근자’로 칭해졌다.

그래서, 우리는 뭐냔 말이다.

이전 단체에서 내 일상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기본 서너 시간 야근, 하루 정도는 자정까지 하고 잠을 깨기 위해 24시간 카페로 직행해서 밤샘, 주말 중 하루는 출근해서 새벽 귀가, 이어 새벽비행기로 출장’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삶이었다. 사무실이 아니어도 어차피 매한가지다. 노트북을 싸들고 카페로 가서 뭐라도 해야 했다. 그때 내 노동시간은 올해 개정 전까지 법적으로 정해졌던 최대 근무시간인 주 68시간은 가볍게 넘었다. 물론 야근수당, 휴일수당은 받아본 적 없다.

놀랍겠지만 나는 이 생활이 싫지 않았다. 주변 모두가 알고 있는 비루한 체질로 몸이 못 견뎌서 문제였지 일하는 자체가 싫지는 않았다. 업무의 절대량 자체가 이미 한계를 넘는 상황에서 아무리 밤을 새고 매달려도 최소 유지 이상을 할 수 없다는 게 좌절스러웠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내 능력으로 가능한 한 더 고민하고 더 찾아보고 더 열심히 해야 했다. 여기서 잘 하지 않으면 그 국가에, 지역에, 주민들에게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대충할 수 없는 이유였고 이는 이 분야에 온 대다수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고 중간관리자급이 되면서 내 안의 충돌이 일어났다. 사회인이 아닐 때에도 노동절 집회에 기웃거리던 내가 아닌가. 쉽게 말해,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었다. 일은 되어야 하니 밑에 직원들도 하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그게 맞는 것인지에 대해 점점 의문이 들었다.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어디 청춘영화에나 나올 법한 스테레오 타입의 상투적인 말을 내뱉으며 이 분야에 왔었다. 열정페이가 횡행하다보니 단어 자체가 좀 우습게 되어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 열정을 쏟는 일이 좋았다. 하지만 20대끼리 내뱉는 열정과 조직 안에서 요구하는 열정은 달랐다. 남한테 요구 안하고 나한테만 적용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결국 분위기가 조성되고 문화가 만연하게 되고 악용의 소지를 만든다.

근로시간의 준수와 노동자의 권익을 생각하는 자세, 근로기준법에 근거한 노동, 누가 뭐래도 맞다. 더욱 진일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여전히 이 분야는 급여나 승진 말고 좀 더 높은 이상을 목표로 열정을 가지고 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저울 달아 재는 게 아니라 그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그러하니, 정해진 틀이 있는 일이 아니고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는 분야이니, 더 시간 들여 고민하고 노력해줬으면 한다.

이렇게 나는 줄곧 헷갈렸다. ‘그래 맞다, 하지만 아닌 것 같다, 근데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었으면 한다’는 식으로 갈지자 행보를 하는 위의 글 자체가 혼란을 그대로 보여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 어느 경계, 태도, 관념,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어느 지점을 계속 떠돌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권이니 세계시민의식이니 가치가 중요하다는 NGO에서 가장 노동권이 없다”는 옆자리 직원의 푸념을 들으며 동조했던 게 이미 8년 전이다.



2.

일, 혹은 활동,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하는 그것 자체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범위를 조금 좁혀 법적 현안을 봐도 이 고민이 현실적 문제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급여 생활을 하는 우리가 노동자인지 헷갈리는 건 일의 특수성 때문이다. 이런 특수성은 NGO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기자는 언론사에 소속된 노동자지만 저널리즘이라는 별개의 가치를 추구한다. 복지기관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를 영리기업과 매한가지의 회사원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 초 개정된 근로기준법에서 대대적인 특례업종의 축소가 있었다. 쉽게 말해 위의 특수성으로 인해 노동시간에 제약이 없던 업종들이 이젠 법대로 근로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소리다.

어차피 딱히 명확한 업종분류도 없는 이 분야지만(다들 어딘가에서 직종 체크를 할 때 맞는 게 없어 대충 사회복지로 기입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언론이나 사회복지 분야가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수 분야의 노동자성을 보다 강도 높게 인정하고 인권과 삶의 질을 고민하는 방향은 결국 우리에게도 숙제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개정안이 완벽해서 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직 시행되지 않았지만 여기 저기 골머리를 썩고 있다. 가장 문제는 추가 인력 채용으로 인한 비용 발생에 대한 부분이다(물론 내가 다녔던 모든 곳은 이 문제에서 자유롭다. 어차피 안 준다). 조금 다른 측면도 있다. 나는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싶은데 52시간을 초과해서 할 수 없다니 말이다(이것도 큰 회사가 아니라면 문제없다. 그냥 수당 안 받고 스스로 어린이처럼 일하는 거다). 무엇보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출퇴근 시 기록된 시간으로 측정할 수 없는 분야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산업화 시대 생산직에게 적용된 방식을 모두에게 동일한 수준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동의 문제는 한 가지의 답이 있지 않다. 아니 모든 게 그렇다. 노동도, 민주주의도, 정치도, 우리 세상도, 고민하고 때론 부딪히고 때론 되돌리며 더 나은 어딘가를 위해 계속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요는, “노동법? 근로기준법? 그게 뭐야 먹는 건가요” 할 게 아니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는 같은 법과 같은 시행령, 부칙 등의 하에 있지 않다. 역시 올해 초 개정되긴 했으나 공무원과 일반 기업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법정공휴일이 달랐고, 공무원은 노조를 구성하는 노동자이나 노동절에는 쉴 수 없으며 파업권은 제한된다. 각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한 고민과 변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단체가 운영비에 허덕이거나 말거나 난 내 수당 챙기고 내 권리 찾겠다고 말하자는 게 아니다. 시대가 변했고, 세대도 변했고, ‘우린 옛날에 말이야~’로 설득할 수 없는 지점에 이미 오래 전에 와 있었다. 덧붙이자면 사실 이 고민도 앞서나간 것일 수 있다. 기업 수준으로 화려한 일부 단체를 빼면 대부분 근로기준법에 의거한 행정 자체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3.

스스로 열정을 착취당하겠다고 발을 들인 젊은이들이 못 버티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로써의 권리를 찾고자 하지만 노동시간이나 급여가 핵심은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노동에 대한 고민은 조직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 경험에 비춰보건대 결국 다른 현실적 문제를 상쇄시킬 수 있는 ‘가치추구’에 대해 조직이 채워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수직적 구조와 소통의 부재, 탑다운 방식의 운영, 세대 간 경험의 차이와 갈등 등은 소위 주창형 NGO에서도 종종 제기되는 문제지만 내가 보기에 이 분야는 더욱 심하다. 일단 출발 자체가 종교기관이거나 사회지도층인 경우가 많다. NGO, NPO, CSO, 명칭은 다양하지만 비영리법인이라는 것 외의 성격은 모호하다(비영리법인이 대수인가. 세브란스도 비영리법인이다). 영리를 추구하고 재화를 창출하는 일반 기업과는 분명 궤를 달리하지만 조직의 운영은 별반 다르지 않다.
(단순히 분야로 따지면 KOICA를 필두로 한 정부기관, 지자체, 대기업, 사회적기업, 재단법인, 대학 등 다양한 주체가 국제개발협력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오직 이 목적으로 운영되는 비영리법인, 흔히 생각하는 NGO에 한정한다.)

다 건너뛰고 어느 정도 비약으로 비치더라도 일단 내뱉는다.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건 사회서비스형 NGO가 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열정이지만, 노동자를 다루고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은 일반 사업체와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진보적이지 않았던 태생,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주장을 무마시키는 가치 추구, 그리고 그 가치와 맞지 않는 조직 운영. 이 혼재가 결국 많은 단체들을 스스로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소규모 단체일수록 조직 운영에 대한 행정 실무가 약하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변혁적인 태도조차 없다. 보통 영리기업에 비해 열려있고 유연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큰 오산이다. 이는 주요 구성원의 낡은 인식뿐만 아니라 직접 사업 이외의 것에 여력을 쏟을 수 없는 조직의 상황도 이유가 되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이 분야에 유입되는 청년층은 늘어나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조직은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오래 전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결말은 쉽다. 남는 자가 남는다. 수많은 청년들이 발을 담갔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떠나간다. 그 청년들이 모두 훌륭한 인재는 아니지만(또라이는 나이를 불문하고 존재한다) 그들만 탓하기에는 도려내지 못한 조직의 환부가 너무 견고하게 박혀 있다. 대다수가 말한다. “이런 일을 하는 곳은 다를 줄 알았다”고. 그리고 이는 잦은 업무 변경으로 인한 실무자들의 전문성 하락과 조직의 ‘허리’ 부재로 이어진다. 성숙하지 않은 이들이 더 성숙하지 않은, 아니 다른 방향으로 성숙해져버린 조직을 떠나고 다시 유입되고 다시 떠나며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뼈아픈 사실은 그토록 본질이라 여기는 ‘현지’에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4.

내 화두는 노동자성에서 조직으로, 조직에서 노조로 옮겨갔다. 민노총 지부가 된다거나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고 연대하는 건 너무 크고 먼 일이다. 일단은 우리 스스로의 고민이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확장에 실재하는 주체의 유무는 매우 큰 차이라고 여겨졌다. 자본가와 대립하며 계급투쟁을 하자는 게 아니라(그 목적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적용에 차이가 있다) 조합의 목적을 연대와 상생에 두고 일종의 산별노조가 필요하지 않나 싶었다. 기존의 노조 모델과 같지 않더라도, 아니 조금 다른 시작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진 이유를 들자면 일단 노동자성 확대를 통해 전문성 확보가 함께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다들 알고 있지만 보조금과 후원으로 운영되는 단체에서 실무자의 급여나 행정비용은 최소화 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인식이다. 좋은 일에 쓰라고 돈을 줬더니 왜 니들이 쓰냐는 비판은 자연스럽다. 이에 발맞춰 비영리법인의 불법행위가 중간 중간 잊을만하면 터져주고 후원자들은 역시나 이놈들 하며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인력들이 최저임금을 겨우 벗어난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별도의 수당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이것이 이 분야에 대한 산별 전문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모금 방식도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길어지니 이건 접어두고, 쉽게 말해 지겹도록 들어온 ‘좋은 일 하시네요’가 틀린 것이다. 난 단 한 번도 이 분야를 봉사활동으로 여겨본 적 없다. 언제까지나 그저 좋은 일, 착한 일로 취급된다면 자연스럽게 노동자성은 폄하되고 급여현실화 역시 불가능하다. 급여는 하나의 예다. 공개된 조직 활동을 통해 이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어떤 가치와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제대로 노동하는 지 알리고 그에 맞는 권리를 갖거나 혹은 고민할 필요가 있고, 더불어 그렇게 하지 않은 이들은 철퇴를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보호’에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청년들이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이 분야에 던져졌다가 튕겨져 나갔다. 아마 나나 내 지인들의 경험보다 지독한 기억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법적 보호망 하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대체를 통해 공개하고 공유하여 나아가는 것이 맞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노동자로써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같이 법적으로 싸워줄 노조 동지’에 대한 필요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이는 뒤에 이어간다.

어쨌든 노조에 대해 떠올리면서 곧바로 문제에 봉착했다. 본질적으로 어떠한 가치와 변혁을 위해 모인 사람들을 노와 사로 구분할 수 있는가? 어느 선까지가 노조 가입 대상인가? ‘이쪽’의 명확한 노동자성과 반하는 ‘저쪽’은 무엇인가?

노조에 대한 고민은 사실 예전에 일하던 단체에서 어렴풋이 했던 적이 있었다. 좀 더 시민사회단체에 가까웠던 두 곳에서 상근자 노조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다. 직과 업이 다른 이들에게 업은 조건 없고 순수하며 고결한 것이어야겠으나 직업이 병행되는 이들에게는 활동가와 노동자의 정체성 혼재를 해결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그땐 그냥 지나가버렸으나 다시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이미 나보다 훨씬 전에 고민하고 실행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떠올린 것이 노조였다. 노조의 상근자는 어떻게 하고 있는 거지?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노조의 상근자는 별도의 조직이 없는 걸까?

여기서 인터넷에서 검색한 10여 년 전 민노당 상근자 노조 관련한 글들의 일부를 옮긴다. 정당의 사례이기 때문에 다르긴 하지만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모든 문단은 중략과 후략이다.

■ 특수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공무원, 교사, 경찰, 종교단체 및 시민단체 활동가들에 대해서도 전혀 노동자라 부를 수 없게 됩니다. 비록 각각의 노동이 가지는 사회적 성격은 다르지만, 이들 모두는 오로지 '자기의 계산' 하에서 이익을 자신에게만 귀속시키지 않기 때문에 결코 사업주가 아니며, 넓게 보아서 누군가의 지휘감독 하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임금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는 점에서 모두 노동자입니다. (중략) ‘활동가’와 ‘노동자’가 배타적이고 선택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노동장 상근자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민주노동당의 강령정신,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새로운 사회 건설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활동가’로 규정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자신의 노동에 대한 기본적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 노동자에 대한 정의가 해결된다.

■ 최소한 업무에 있어서는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개진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 효율적인 업무집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이러한 조건이 열악한 근로조건을 감내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떼돈을 벌고 싶었다면 이곳에 오지 않았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일하며 자랑스럽게 나의 조직을 대변하고 싶었다. 높은 노동 강도나 낮은 급여보다 이것이 더 중요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 분명한 것은 일반 회사보다는 느슨하기는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다수의 중앙당 상근자들이 접한 것은 확실히 일반 노동자가 경험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시받고 통제받는 존재이자 문제가 생기면 책임도 부담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질곡받는 노동자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 조직에 대해 고민하며 느꼈던 부분과 일치한다. 결국 노동자로 대해지면서 한편으론 다른 가치를 강요받아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당의 특수성도 있고 상황도 다르다. 그러나 결론은 같았다. 더 많은 글은 가져올 수 없었지만 노조는 무조건적인 이익 보호나 투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로써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와 상황이 충돌했을 때 함께 고민하고 때론 맞설 수 있는 연대로써 작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노조를 만들자는 것인가.



5.

그럴 리가 없다.

위의 ‘보호’에 대한 부분에서 마저 이어간다. 위에도 썼지만 ‘노조를 통해 노동자가 법적 보호를 받도록 해야겠다’고 하면 부당한 처사를 받았을 때 피해자로써 법적 싸움을 하고 보상금을 받아내거나 처벌 받게 하는 상황이 떠오를 것이다(물론 이런 역할까지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더 중요한 것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대한 연대체를 통한 공개와 공유, 그리고 이어질 ‘변화’다.

교섭단체가 아니어도 좋다(누구랑 교섭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한 건 혼자 끙끙 앓다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하던 사람들이 동일 노동을 하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만나 함께 이겨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을 통해 정말로 이 분야 전체에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는 것이다.

한 사람만의 한 케이스로 무언가가 바뀌지 않는다. 조직 하나가 바뀌었다고 전체 분야에 바람이 불기 어렵다. 하지만 함께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고 그 소리가 커졌을 때 무시하기는 어렵다. 꼭 어떠한 법적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조직이나 혹 이 분야를 둘러싼 외부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급여를 줄 수 없고 법으로 정한 수당을 챙겨줄 수 없는 현실적 한계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분야를 떠나는 대다수의 이들이 돈에 대한 문제로 떠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알고 있다. 납득되지 않는 사업, 현지에 주는 피해, 잘못된 공명심, 민주적이지 않은 조직구조, 그 와중에 주어지는 과도한 업무, 그리고 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세계.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어차피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내가 매우 훌륭한 조직원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줄곧 유지했던 가치는 있다. 그것은 무급인력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이다. 단체들의 목을 죄는 가장 큰 것은 역시나 인건비다. 때문에 국가에서 주는 급여 보조를 받거나 지자체나 재단의 인력 지원 사업이 중요하다. 대표적으로는 KOICA에서 본부 인턴 급여나 해외에 파견되어 업무를 수행할 봉사단을 지원받는다(KCOC가 수행기관이지만 KOICA 사업이다).

이들이 받는 돈은 생활에 필요한 최저선이지만 대형 단체들을 제외하고 이들의 역할은 ‘인턴’이나 ‘봉사단’으로 한정해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실무자급의 업무를 준다고 해서 계약 종료 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단체는 많지 않으나 그걸 알고도 경험을 위해 들어오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나는 최소한 이들이 기관에서 일하는 동안 단체는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야하게 표현하자면 공짜인력 아닌가. 그리고 그 혜택은 나도 오래 전에 그랬듯이 돈이 아니라 경험과 교육이다.

그래서 나는 인턴들이 일에 능숙하지 않고 혹 지식이 없다고 해서 시간을 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에 최선을 다 했다. 지식을 쌓고 경험이 될 만한 일을 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시간을 쪼개 최대한 설명하고 고쳐주고 공유하려 했다. 대학졸업 후 별다른 경험없이 오는 친구들은 대부분 문서 작성부터 엉망이다. 문서가 어느 정도 잡히면 회계 쪽도 하게 해보고, 담당자로써 안을 짜게 하고, 그들이 하는 일이 왜 중요하고 어떤 부분이 포인트인지 집어 줬다. 정신없어 별다른 설명없이 그저 업무를 던져야 했을 때는 절대 강압적으로 하지 않고 부탁을 했다.

무엇보다 내가 생각하는 개발협력의 그림이 무엇이고 내가 왜 이 분야의 일을 하는지, 우리의 일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선배의 입장에서 전하는 것도 중요했다. 절대 나처럼 할 필요는 없지만 나의 경험과 생각을 참고하라고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이렇게 말은 해도 그들 입장에서는 나에 대해 불만도 있을 거고 내가 생각지 못한 한계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분야에 발들인 젊은 인력들을 노동자로 활용하는 단체가 취해야 할 방향이다. 스스로 선택했다는 이유로, 열악한 거 알고 들어 왔다는 이유로, 어차피 다음 지원 사업을 받아 교체될 인력이라는 이유로, 무엇보다 ‘우린 돈도 없고 좋은 일 하니까 당연하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자발적인 떠남’을 ‘당한다.’ 그들은 단체에 있는 동안 단체가 추구하는 어떠한 가치에도 공감하지 못하고, 실체를 깨달은 그들이 느끼는 건 허황됨과 가식뿐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나는 너무나 괴로웠다. 나 개인이 추구하며 소리 높여 주장한 가치가 내 조직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 그 조직의 일원으로써 이를 방조하는 역설 속에서 나는 말 그대로 웃긴 사람이 되었다.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고 싸우다 지쳐 떨어져 나간 그저 패자가 되었다.

인턴 얘기가 길어졌지만 결국 잠시 왔다 떠나간 인턴이든 노동자로써 이미 이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든 원하는 건 같다. 납득되는 조직과 공감되는 가치다. 기업이나 정부와 협업하더라도 NGO의 기본 가치를 잃지 않는 윗선과,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후원을 요구할 수 있는 사업 방향과,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해결이다.

그렇게 된다면 급여가 적든 노동자로써의 권리를 침해당하든 상관없다는 게 아니다. 우리의 특수성은 이미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다. 어느 정도 양보하고 이해하며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고, 이것이 복잡한 노동 문제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자부심이 무너진 활동가에게 남은 건 처절한 노동뿐이고, 그 끝은 뻔하니까.



+

사전 구상없이 머릿속을 떠다니는 것들을 잡아채내어 이어봤다. 짧은 시간에 되는대로 쓴 글이라 복잡한 것들은 적당히 생략하거나 이미 다음 단락으로 진행하는 머리를 따라잡기 위해 넘어간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경험에 따라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나 역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한번이라도 뱉어내고자 썼다는 것이다. 사실 파고들자면 단락으로 쓸 수 있는 문장이 여러 개고 별도의 글로 쓸 수 있는 단락이 여러 개다. 그냥 중간에 멈춰진 마인드맵쯤으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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